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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업데이트가 없겠다. 어른이 되가려면, 말해질 필요가 없는 일들은 삼킬 줄도 알아야 하니까. 의도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으니. 2011년이 저물어 갈 즈음에는 둘 중 하나에서 안착해내야 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자. 입과 손에서 뻗쳐나가는 글과 말수가 줄었다. 언소셔블하고 비욘드엣지해지기 전에 트위터로 돌아가, 일상을 비교적 라이트하게 덜어내는 것도 과제이자 능력이다. 그치만 동안의 나의 번민과 혼란을 옳게 잡아 준 얼음집에게, 안녕. 다시 돌아올 땐 근사해질 수 있지? ![]()
한국으로 치면 봄방학, 스프링-브레이크 기간이 찾아왔다. 늘 소란과 사건의 중심이었던 우리 기숙사는 저마다 피서 떠나는 학생들로 텅 비게 되었고 나는 그 희귀한 적막을 못 이기겠는 척, 냉큼 친구와 함께 베가스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물론, 짬짬이 모아뒀던 비상금도 챙겨서. 절대 슬롯머신이나 한 번 땡겨 보려고 마련해 둔 것은 아니었지만 무릇 사람 앞 일은 모르는 법, 라스베가스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내게도 777을. 처음이었다. 제발 침착하자며 수 번을 머리로 되뇌지만 막상 표정이나 몸짓 같은 것은 숨길 수 없는 것이더라. 예를 들면 귓불이나 뺨 같은. 지난 겨울의 몹시 추웠던 어느 날, 대뜸 내게 목도리를 둘러달라는 그의 응석에 할 수 없이 손을 뻗었다. 한참은 가까이 다가 온 K의 시선. 며칠간 묵게 될, 호텔 트로피카나(Tropicana)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길이 막히지 않아 택시 요금이 싸게 나왔다. 잭팟을 터뜨리려면 일단 팁부터 아껴둬야 해. 객실까지 에스코트 해주는 도어맨의 수트가 빨갛다. 나도 붉었었지, 목도리를 못 매겠으니 매어달라는 건 너무나 노골적이지 않아? 그가 나간 후 우리는 짧고 시원한 옷들로 갈아입었다. 베가스에 왔으니 베가스 법을 따르기로. 공항에서부터 중심지까지, 택시에서 내다 본 거리와 사람들 풍경은 너무 화끈해서 화근일 정도로 상상보다 많은 걸 용인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오후 4시였다. 해가 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 이미 도시는 파티 분위기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라스베가스에서의 관광 코스를 짜는 일은 몹시 간단하다. 하루를 묵는다면 스트립 양쪽에 늘어선 호텔 거리를 구경하면 된다. 베가스를 배경으로 하는 영상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화려한 조명으로 뒤덮인 호텔과 그 앞 도로를 달려나가는 미끈한 리무진을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다. 만일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이틀이라면 거기에 쇼핑을 추가하고, 3일이라면 카지노와 약간의 알코올을. 그보다 넉넉한 일정일 경우에는 그랜드 캐년을 다녀오는 것도 좋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미 많은 날들을 서부의 다른 지역에서 보냈고, 라스베가스는 학교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사이 나를 향한 노여움이 풀리면 좋으련만. 이제 어차피 K를 곧 보게 된다. 참 쉬운 사람이었다. K에게는 뭐든 쉬웠다. 잠결에 내 손을 잡고 놔주지 않더니 다음엔 술기운에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나는 못내 그가 안쓰럽다가 귀엽다가, 좋아졌다. 실은 예전부터 내가 그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프링-브레이크 하루 전 날, 그에게 고백했다. 너와 사귀고 싶지는 않다, 는 스페셜 K의 거절은 단기간 체중감량에 꽤나 효과적이었다. 홧김에 베가스 행을 결정했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벨라지오 호텔에 꼭 가보고 싶었다. 브래드 피트와 조지 클루니의 투톱 캐스팅으로 이미 차고 넘쳤던 영화 『오션스 일레븐』(2001)의 엔딩 장면에 등장하는 분수 쇼는 라스베가스의 자부심이다. 내가 얼마나 분수 쇼에 약한 인간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하나 더 있으니, 누구라도 혹시 『섹스 앤 더 시티』 시즌4에서 (참고로 15번 째 에피소드) 분수대 앞의 캐리와 에이든을 기억하는지? ‘이렇게 아름다운 드레스도 입었고 나는 턱시도도 입었잖아. 그냥 라스베가스로 가자, 그리고 결혼하는 거야. 복잡한 생각 할 거 없어.’ 에이든은 대답이 없는 캐리의 손을 잡고 분수대 근처에서 빙그르르, 돈다. 날이 너무 짧았다. 하늘은 이내 칠흑처럼 어두워졌고 우리는 벨라지오를 향해 걸었다. 정확히 도보로 두 블록을 남겨두었을 때, 마음이 울렁거렸다. 엄청난 폭과 너비로 늘어선 분수에서 검은 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눈부신 물줄기. 별빛 섬광이 거기에 있었다.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려는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그런 소문이 생겨났던 걸까. 너를 두고, 날 좋아하는 네 마음을 두고 내가 내기를 걸었다는 이야기가. 분명 그를 부추겼을 것이다. 비록 K는 고백을 받아들여주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마음에도 없는 대쉬에 넘어갈 뻔 했다는 게 그를 더욱 열 받게 만들었을 것이다. 너를 마주하면 뭐라 말해야 할까. 우뚝, 분수 앞에 섰다. 지금 여기에 서있다. 물줄기는 거대한 호수의 둘레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따라 수그러들기도 하고, 용맹해지기도 했다. 모든 순간이 완벽하게만 느껴졌다. 저 멀리 어디에선가 봄바람이라도 불어오는 듯 에디트 피아쁘의 <Non, Je Ne Regrette Rien>에 맞춰 춤추는 물방울의 궤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을 그러고 있었나, 친구가 내 팔을 흔드는 감각에 비로소 주위를 둘러봤다. 벌써 사십 분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가야 한다고. 여기까지 와서 분수 쇼만 보고 갈 수는 없으니 알겠다며 몸을 돌리려는데 다음 음악의 간주가 들려왔다. 바로 그것은 오케스트라 연주곡 버전의 <Time to Say Goodbye>, 세상에. 서있는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놀랍도록 정교했고 무서우리만치 웅장했다. ‘창가마다 내 마음을 펼쳐요. 당신이 날 사로잡아버린 마음을. 당신은 빛을 가득 채워 주네요. 길가에서 발견한 그 빛을.’ 나는 띄엄띄엄, 작게 소리 내어 불렀다. 우리는 음악이 끝나기 전에 벨라지오 분수를 떠나왔다. 몇 블록쯤 멀어졌을 때서야 차례로 거두어지는 물줄기를 언뜻 봤던 것도 같다. 친구가 나를 보더니 묻는다. “너 목걸이 어딨어?” 진작에 풀어두어 손바닥에 꼭 쥐고 있다가 그녀가 볼 세라 얼른 분수에 던져 넣었다.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아끼던 은빛 목걸이는 다행히도 호수 저 깊은 곳에 안착했다. 날아가 물에 잠기기 전 반짝임을 잠깐 보았을 뿐이다. “응, 저기에 던져 넣었어.” 모든 게 다 괜찮을 것 같다. 괜찮다. ![]() ![]() ![]() ![]() ![]() ![]() ![]() ![]() ![]() 땡스투. 바쁘고 피곤한 와중에 다들 이렇게 기꺼이 와주어 고마워요. 땡스투투. 사랑하는 오마에 그리고 나의 오랜 그대의 얼굴은 더욱이.
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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